“10년을 공부하여 과거에 합격하지 못하면 내 아들이라고 말아라. 나 역시 아들이 있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가서 열심히 하라.” “10년 안에 나라를 찾겠다.”
앞글은 신라 최치원의 아버지 견일이 868년 12살 어린 나이로 목숨을 건 황해의 험난한 뱃길, 머나먼 고통의 뭍길을 지나 당나라 수도 장안(長安`현 西安)으로 유학 가는 아들에게 한 당부다. 뒤는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 조선 패망에 동학을 천도교로 바꾸고 최제우, 최시형에 이은 3대 교주가 된 손병희의 각오다. 새 목표와 달성을 위한 앞선 사람들의 ‘10년 과업’ 다짐이다.
최치원은 뼈를 깎는 노력으로 유학 6년 만에 급제해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켰다. 손병희의 ‘복국(復國) 10년 계획’도 치밀했다. 당시 300만 명의 조선 최대 조직인 천도교를 바탕으로 인재 육성과 재정 기반부터 다졌다. ‘사람’ ‘돈’ ‘조직’의 3대 자원을 갖춘 끝에 1919년 터진 3`1만세운동에 명운을 걸었고 엄청난 희생을 치렀다. 이를 계기로 상해 임시정부가 수립됐으니 ‘복국 10년’의 꿈은 불완전하나마 나름 이룬 셈이다.
이처럼 새로운 일을 향한 10년 과업의 성공 사례는 꿈과 목표 달성에 10년 정도 인고(忍苦)의 세월과 투자가 필요함을 말해준다. 물론 반대도 숱하다. ‘10년 공부 도로아미타불’처럼 애쓴 세월과 노력에도 결과의 헛됨이다. 까닭은 여럿이다.
이룰 수 없는 목표나 준비 소홀과 실천 없이 말만 앞세운 헛구호가 그렇다. 지금, 권력층이자 최고 엘리트가 모인 판검사의 법조 집단에서 벌어지는 추잡스러운 부정부패 비리는 더없이 좋은 증거이다.
대법원장의 대국민 사과도 같다. 대법원장은 1995년, 2006년에 이어 어제 세 번째 사과문을 발표했다. 1995년은 인천지법 집달관 비리로, 2006년은 1억원을 받은 조관행 부장판사 탓이다. 그제는 인천지법 김수천 부장판사가 1억7천만원의 금품을 받아 구속되면서다. 공교롭게 그제 검찰총장도 김형준 부장검사 비리 의혹에 대해 사과했다. 하지만 사과는 공허할 뿐이다. 10년꼴로 되풀이된다. 10년 후면 또 나올 것이 뻔하다.
이 기회에 선민(選民) 냄새의 판검사 이름을 바꾸면 어떨까. 판검사(判檢事)를 판검자(判檢者)로. 자(者)가 보다 평등하고 어울린다. 피의자 용의자 노동자 근로자 사용자 지배자 피지배자 창시자 신자 등처럼. 말뿐인 사과로 사람이 바뀌길 기다리기보다도 판검사 명칭부터 바꿔 새 각오를 다지고 새 출발함이 나을 듯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