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행정과 적법절차의 원리
적법절차의 원리란 헌법 제12조에 규정된 헌법상 기본원리인 법치주의에서 파생된 원리이다. 그 내용은 모든 국가공권력이 국민의 생명, 자유 또는 재산권을 침해하는 경우 적법한 절차를 준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본래 적법절차의 원리는 영국의 1215년 마그나카르타가 형사절차에서의 적법절차 준수를 선언한 것에서 시작되었으나, 미국의 1791년 수정헌법 제5조에서 재산을 생명, 자유와 동일한 반열에서 보호되어야할 영역으로 규정하면서 재산권에도 적용되기 시작하였다.
실제로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재산권은 생명, 자유 못지않은 것 혹은 그보다 더한 것일 수도 있다. 물론 인간의 생명 자체는 돈으로 환산하기 힘든 것이지만 경제학자들은 끊임없이 인간의 생명을 비롯한 사회의 모든 가치를 화폐라는 단일 척도로 측정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실제로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는 미국인 1명의 생명의 가치가 135만 달러라고 하는 주장이 소개되어 있다). 그러한 주장자체에는 필자도 동의하지 않지만 그만큼 현대사회에서 돈(재산권)이 생명, 자유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역설하는 정도의 주장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가 국민의 재산권을 침해할 경우 마땅히 생명, 자유를 침해하는 형사절차에 준하여 엄격한 법의 통제를 받아야 함은 명백하다.
과거 우리나라 형사절차는 적법절차가 무시되는 어두운 시절도 있었으나 최근 2007년 형사소송법의 개정,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연이은 인권보호적 판례 선고 등으로 형사절차에서의 적법절차 원칙 준수는 선진국에 준할 정도로 올라가고 있다.
그러나 이에 비하여 재산권을 침해하는 조세행정의 영역에 있어서는 그에 준할 정도로 적법절차의 원리가 침투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아쉬운 감이 있다.
형사절차에서 증거물의 임의제출이 엄격히 제한됨에 비하여, 아직도 세무조사 시에는 임의영치가 너무도 당연시 되고 있다. 세무조사 대상의 선정에 있어서도 항상 편향적인 선정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많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모든 국민을 위한 살림자금인 국가의 예산을 책임지는 국세청 입장에서는 그 막중한 책무를 다하기 위하여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고, 이러한 노력에 비하면 위와 같은 절차적인 면은 사소한 것이 아니냐는 항변도 나름 타당한 면이 있다. 그러나 적법절차의 원리라는 것은 단순히 절차적인 사소한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국가의 모든 행정의 근본을 확고하게 관통하여야 하는 우리 헌법정신의 요체 중의 요체이다. 따라서 다소간의 비효율이 따른다고 하더라도 조세행정을 해나감에 있어 적법절차의 원리는 끊임없이 추구되어야만 하는 절대명제일 것이다.
최근 대법원은 중복세무조사로 인한 부과처분은 위법하고, 중복세무조사에 관하여는 행정소송법상 집행정지가 신청될 수 있고, 명확한 근거가 없는 세무조사선정은 위법하고 그로 인한 부과처분도 위법하다는 등, 일련의 판결을 통하여 적법절차의 원칙을 조세행정에서도 관철시키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 아울러 국세청도 과거와는 달리 세무조사 대상 선정 및 진행과정에서 국세기본법 및 관련 규정을 철저히 준수하여 진행해 나가려 하고 있다.
이러한 국세청, 법원의 동향은 뒤늦게나마 조세행정이 국민의 재산권에 미치는 심대한 영향을 반영하여, 적법절차의 원리 및 그 상위 원칙인 법치주의에의 접근을 도모하려는 희망적인 움직임이다.
세금을 두드려 맞고 기뻐하는 국민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즉 실체적인 내용에 있어서 납세자의 진심어린 동의는 이끌어 내기 힘들다는 말이다. 그러하다면 최소한 정당하고 적법한 절차를 통하여, 최소한 적확한 절차적 보장을 받았다는 측면에서 납세자를 승복시켜야만 한다.
이러한 절차에 대한 승복이 납세자들의 마음속에 당연한 것으로 자리 잡는 것이 선진화된 조세행정으로 가는 가장 큰 발걸음일 것이다. 또한 그러한 발걸음에는 국세청, 법원 등 유권기관의 노력뿐만 아니라, 세무사 등 세무대리인의 동행이 필수적일 것임은 두말할 나위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