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정체성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이 무엇일까요? 가장 근래에는 이른바 촛불시위로 일컫어지는 한미FTP 반대 시위에서 많이 회자되었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라는 말 일 것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시위대가 법대로 하라며 이런 노래를 부르는 상황이라니.. ^^')
어쨌거나 그런 노래(또는 구호)의 출처는 어디였는지 다들 아실 겁니다. 바로 대한민국 헌법입니다. 그리고 그 헌법에는, 이 조항 외에도 대한민국의 시작과 성격을 규정하는, 즉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에 대한 규정이 있는데 바로 '헌법전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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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헌국회, 헌법 공포 기념 우표


그러면 헌법 전문(前文)은 무엇일까요? 위키백과(http://ko.wikipedia.org) 에 의하면 다음과 같이 정의 되어 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大韓民國憲法前文)은 대한민국 헌법의 조문 앞에 있는 공포문(公布文)이다. 헌법 제정의 역사적 과정, 목적, 헌법 제정권자, 헌법의 지도 이념이나 원리 등을 규정하고 있다. 전문은 본문과 마찬가지로 법규범으로서의 가치를 가진다고 보는 것이 통설이다.


이 헌법전문에 의하면 대한민국의 역사적 전통성은 3.1절 부터 시작한다고 정의 되어 있습니다. 

1948년 7월 12일 최초의 헌법 전문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며 모든 사회적 폐습을 타파하고 민주주의제제도를 수립하여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케 하며 각인의 책임과 의무를 완수케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여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결의하고 우리들의 정당 또 자유로히 선거된 대표로서 구성된 국회에서 단기 4281년 7월 12일 이 헌법을 제정한다 

 현재의 헌법 전문 (1987년 12월 29일 9차 개헌 ~ )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헌법 전문의 변경 이력 

최초의 헌법 1948년 7월 12일 
1차 개헌 1952년  7월  7일 - 변경사항 없음
2차 개헌 1954년 11월 29일 - 변경사항 없음

3차 개헌 1960년  6월 15일 (4.19 의거 후)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며 모든 사회적 폐습을 타파하고 민주주의제제도를 수립하여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케 하며 각인의 책임과 의무를 완수케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여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결의하고 우리들의 정당 또 자유로히 선거된 대표로서 구성된 국회에서 단기 4281년 7월 12일 이 헌법을 제정한다.

4차 개헌 1960년 11월 29일 - 변경 사항 없음
1948년 7월 12일 이후 10여년간 4번의 헌법 개정이 있었지만, 헌법 전문은 그대로 유지가 됐습니다

5차 개헌 1962년 12월 26일(1963년 12월 17일 시행, 5.16 군사반란 이후)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계승하고 4·19의거와 5·16혁명의 이념에 입각하여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건설함에 있어서,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며 모든 사회적 폐습을 타파하고 민주주의 제제도를 확립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여, (우리들의 정당 또 자유로히 선거된 대표로서 구성된 국회에서)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된 헌법을 이제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5.16 군사반란 이후 헌법 전문의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3.1 운동에 이어 4.19와 5.16이 등장합니다. 4.19는 의거로 표현하고, 5.16은 혁명으로 미화 되었고 단기가 서기로 변경되었습니다.  또한 국회가 무력화 되는 계기가 된  "우리들의 정당 또 자유로히 선거된 대표로서 구성된 국회에서" 라는 부분도 처음으로 삭제됐는데, 과거 4번의 헌법 개정때는 없었던 헌법 개정 절차가 처음 등장합니다. 이전에는 헌법 개정을 국회에서 했는데, 이때부터 국민투표 절차가 도입됩니다.

6차 개헌 1969년 10월 21일 - 5차와 동일

7차 개헌 1972년 12월 27일(유신헌법)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의 숭고한 독립정신과 4·19의거 및 5·16혁명의 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평화적 통일의 역사적 사명에 입각하여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공고히 하는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건설함에 있어서,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며 모든 사회적 폐습을 타파하고 민주주의 제제도를 확립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1962년 12월 26일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최악의 헌법으로 알려진 유신헌법입니다. 민주주의 제제도를 확립하기 위한 방법에 대한 정의를 삭제했으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공고히 하는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건설함"이라는 역설적 표현으로 유신독재의 마각을 감추기 위한 수사를 사용했습니다. 아마도 '새로운' 이라는 표현은 유신(維新)의 신(新)을 암시하는 것이 아닐까요.

8차 개헌 1980년 10월 27일 8차 개헌(10.26 군사반란 이후)
유구한 민족사, 빛나는 문화, 그리고 평화애호의 전통을 자랑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계승하고 (4.19 의거 및 5.16 혁명의 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에 입각한 제5민주공화국의 출발에 즈음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하는 새로운 역사를 창조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1960년 6월 15일, 1962년 12월 26일과 1972년 12월 27일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역설적이게도 군사반란과 광주의거를 탄압한 정권의 출발과 함께 한 헌법개정에 대한국민을 설명하는 수식어  "평화애호의 전통을 자랑하는" 이라는 말이 텃 붙습니다. 1979년 10.26 박정희 사망, 12.12 군사반란,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등 사회적으로 어수선한 상황에서 개정된 헌법이란 점에서 그 의도가 엿보입니다. 그리고, 1962년 5차 개정때 처음 등장했던 4.19와 5.16이 처음으로 빠지고, 유혈진압으로 세워진 전두환의 제5민주공화국이란 명칭으로 채워집니다.  마지막 부분 헌법 개정 과정에서 4.19 혁명 직후 개정된 1960년 3차 개헌 날짜와 7차 개정인 유신헌법 개헌 날짜가 나옵니다.

9차 개헌 1987년 12월 29일 ~ 현재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9번째 개헌은 1987년 6월 항쟁 이후 1987년 10월에 개정되고 1988년 2월에 시행됩니다. 
8차 개헌때 사라졌던 4.19 민주이념을 계승한다는 것을 명시함으로써, 1919년 3.1 운동 이후 상해임시정부 법통과 독재를 무너뜨린 4.19 민주이념의 승계를 보다 확실히 명기 하게 됩니다. 



이렇게 변화가 많았던 '헌법 전문'과 달리 그 내용이 거의 변하지 않는 것이 바로 '헌법 1조' 입니다. 아랫 글을 참고해 보시죠.  

출처 : 박대용 기자 블로그  http://biguse.tistory.com/599 
대한민국 헌법 1조가 바뀐 적도 있었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前文)이 정권의 입맛대로 바뀌어왔는데 반해 9번의 개정에도 거의 바뀌지 않은 조항은 헌법 1조입니다.  노래도 있지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1948년 7월 12일 헌법을 처음 만들 때는 1조와 2조가 구분돼 있었습니다.

1조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대해, 2조는 국민의 주권에 대해 명시했습니다.

최초 헌법에서 1조는 왕정이 아니며, 세습에 의한 권력 이양을 금지시킨 조항으로 해석되고,  2조는 대한민국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구체적으로 밝히고, 그 권력의 모든 근원을 신(神)이나 몇몇의 부자 혹은 특권 귀족이 아닌, 모든 국민임을 명시한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1948년 7월 12일 제헌헌법>

그런데, 1961년 5.16 군사반란 이후 개정된 5차 개헌때 1조, 2조가 통합됩니다. 최초에 1조 정체성과 2조 주권에 대한 구분을 한 이유가 있을텐데, 5.16 군사반란 이후 이 두 조항을 통합시켜 버린 것입니다.<1962년 12월 26일 5차 개헌>

이후 6차 개헌때도 이 형태로 이어지다가 1972년 12월 7차 유신헌법때는 국민 주권에 대한 규정인 2항의 내용이 처음으로 바뀝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여기까지는 변함이 없다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가 삭제되고, 국민은 그 대표자나 국민투표에 의하여 주권을 행사한다. 로 주권의 행사 방식이 제한됐습니다. 건국 이후 처음으로 국민이 주인에서 주변인으로 바뀐 순간입니다.<1972년 12월 27일 7차 개헌>

이후 12.12 군사반란으로 권력을 장악했던 5공화국의 8차 개헌때 비로소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는 문구가 살아났지만, 전두환 정권은 기만적이게도 헌법 개정 다음해인 1981년 2월 25일 장충체육관에서 간접선거로 대통령에 당선됩니다.<1980년 10월 27일 8차 개헌>

지금의 헌법인 1987년 10월 9차 개헌때도 이 부분은 80년 개헌때와 마찬가지로 변함 없이 유지됐습니다만, 국민의 직접 선거에 의한 대통령 선출은 80년 개헌으로부터 7년 뒤인 87년 12월에야 이뤄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