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독립선언을 성공시키기 위한 의암손병희 선생의 치밀하고 원대한 기획아래..
대중화, 일원화, 비폭력 3대 정신의 위대한 대한민국이 탄생한 것이다.
아래는 옥파이종일의 '묵암비망록'에 그려진 이종일 선생의 일기형식의 비망록이다.
1918년.....오랫동안 준비해 온 의암의 참모로서..독립선언이 더디어 짐을 초조해 하고 있으나,
용시용활의 철학으로 몸에 배인..봉황의 큰 뜻을 어찌 일개 참모가 헤아릴 수 있을 것인가?
의암손병희 선생은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天地人)이 함께 하는 때(時)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의암경영연구소*
[1918년 5월 6일]
듣건대 의암이 어제(5월 5일) 권,오,최,이종훈 4명과 우리의 독립운동은 다른 나라의 경우와는 달리
대중화, 일원화, 비폭력의 원칙에 입각하는 문제를 논의하였다고 한다. 대중화란 나의 주장과 같이 각계 각층의
민중을 동원하는 것이고 일원화는 여러 계층의 독립운동계획을 하나로 대동통합하자는 재래의 안이며 비폭력도 그렇다. 이 문제는 이미 내가 1년 전에 주장한 것인데 4사람이 심사숙고하여 원칙을 정한 것 같다.
[1918년 9월 2일]
손의암 중심의 민중시위운동의 구체적 계획이 성안되었다. 곧 갑오, 갑진의 맥락을 이은 [무오독립시위운동]으로
낙착을 본 것이다. 손의암은 원로와의 교섭을 분담처리하고 육당 최남선으로 하여금 선언문도 짓게 했다.
나의 것은 인쇄도중에 중지하고 육당 것을 쓰기로 했다.
[1918년 11월 10일]
이러다가는 발각되지 않을까.......20일 중광단원 39명이 오히려 무오대한독립 선언서를 발표하겠다고 하니
우린 무얼 했느냐. 망설임으로 이같이 낭패지경이 된 것이다.
[1918년 12월 15일]
지난 번의 독립운동 3대원칙을 재확인했다.
[1919년 1월 22일]
어제 고종이 일본에 의해 독살당했다.
[1919년 2월 20일]
오늘부터 독립선언서를 보성사에서 인쇄하기 시작하다.
[1919년 2월 25일]
2만5천매를 우선 1차로 인쇄 완료하여 천도교본부로 운반하다.
[1919년 2월 27일]
오늘까지 2차로 1만매를 더 인쇄하여 천도교당으로 가지고 가다가 파출소(경찰관)에서 검문당했으나
족보라고 속이고 겨우 운반했다.
......중략......
[자료출처]
- 옥파이종일선생논설집 3권, 옥파기념사업회, 교학사, 19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