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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세금산책) 역외탈세 적발과 정책적 방향 2012-12-24

의암경영포럼(의암경영연구소 산하)에서는..
약속한대로 새해부터 조세전문가들로 구성된 필진이 '세금산책'이란 테마로 글을 게재하기로 하였습니다.

다사다난한 금년이 가기 전에 맛보기로 올려봅니다.

의암경영연구소장.

역외탈세 적발과 정책적 방향

최근 역외탈세 조사사건들과 관련하여 일련의 ‘왕’들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다. ‘선박왕’, ‘구리왕’, ‘완구왕’이 그들이다. 국세청은 이들이 여러 나라에 걸친 정밀한 택스플래닝을 통하여 국내에서 정당히 납부하여야할 세금을 납부하지 않고 개인의 부를 축적했다며 그들에게 거액의 세금을 부과하였다.

우선 ‘구리왕’ 차용규의 경우 삼성물산 직원으로 1995년 카자흐스탄 최대 구리 채광·제련업체인 카작무스의 위탁경영을 하다가, 2004년 삼성물산 투자지분을 인수했다. 그는 이어 카작무스를 런던증권거래소에 상장하면서 자신의 지분을 매각해 1조원대의 차익을 남겼다고 한다. 구리왕의 경우 영국에서 거주자로 인정받고 주식양도차익에 관한 소득세를 납부한 점 등이 고려되어 과세전적부심사에서 인용결정(취소)을 받았다고 한다.

‘완구왕’ 박종완은 미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비니 베이비’ 등 봉제인형을 미국 타이(Ty)사에 납품해 부를 쌓았다고 한다. 형사재판에서는 1심에서 무죄를 받은 상황이고, 형사재판 2심 판결과 행정재판 1심 판결을 목전에 두고 있다. 조세심판원에서는 미국 국세청(IRS)이 ‘완구왕이 미국거주자가 아니다’라고 확인한 확인서를 제출받고 신청 기각결정을 하였다고 한다.

‘선박왕’ 권혁은 해운업계의 입지전적인 인물로서 1993년 일본에 시도상선을 설립한 후 불과 20년 만에 10조원대의 자산가로 등극했다. 선박의 ‘편의치적’을 위하여 홍콩과 일본 등지에 관련 회사를 세운 뒤 이를 진두지휘하여 최대 280척의 선박을 보유하였다고 한다. 형사재판 1심 판결이 곧 선고되고, 행정재판 1심 판결도 뒤이을 것으로 보인다.

위 ‘왕’들 사건의 쟁점은 이른바 ‘거주자’ 여부이다. 미국과 같은 예외도 있지만, 현재 전세계 대부분 나라의 과세체계는 큰 틀에서 다음과 같다. 개인 혹은 법인이 어느 나라의 ‘비거주자’일 경우에는 그 나라에 원천이 있는 소득에 관하여만 과세하고(속지주의), 반면에 한 나라의 ‘거주자’일 경우에는 그 나라에서 전세계소득을 과세한다(속인주의). 위 거주자, 비거주자 여부는 국적과 무관하게 주소, 거소, 생활관계 등 별도의 기준에 따라 판단한다(앞에서 얘기한 바와 같이 미국의 경우 거주자 여부가 아니라 국적에 따라 이를 판단하는 독자적인 기준을 가지고 있다).

속지주의와 속인주의의 채택에 관해서는 미국의 초기 국제조세법 체계 및 NL(국제연맹), UN(국제연합) 초기에 모범조세조약을 만들면서 정립된 연혁적인 유래 등 복잡한 논의가 있지만, 하여튼 지금은 이러한 틀이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고, 상식의 수준에서 보더라도 속인주의 및 속지주의 각각이 나름의 근거를 가지고 있다. 즉 한 나라에서 번 소득을 그 나라에서 세금 내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는 것을 속지주의로 결집할 수 있고, 어느 나라에서 살고 있는 이상 그 사람이 번 돈은 모두 그 나라에 세금을 내야하지 않겠느냐는 속인주의적 발상도 무척 자연스럽다.

속지주의의 판단에도 나름 어려운 점이 있지만(어떤 소득이 어느 나라에 원천이 있는 것인가) 속인주의 판단, 즉 거주자성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굉장히 모호하고도 어려운 일이다.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지 않았던 19세기 및 20세기 초까지는 한 개인 및 기업의 주거주지를 옮기는 것이 쉽지 않았기에 조세목적 상 고의적으로 거주지를 조작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으나, 교통과 통신이 고도로 발달한 현대 사회에서는 고의적으로 거주지를 조작하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다.

위 ‘왕’들도 모두 조세목적상 의도적으로 거주지를 계획하고 그에 따라 여러 상황을 형성해 나간 정황이 있다. 국세청은 이러한 점을 포착하여 가족 등 생활관계의 중심지를 우리나라로 볼 여지가 있는 이상 우리나라 거주자라고 생각하고 과세한 것이다.

이러한 법리적인 싸움의 결론이 어떻게 될지, 현재로서는 예측하기 힘들다. 거주자의 법률적 개념이 본래 모호하고 일응 자의적인 면까지 있을 뿐더러, 개별 사안에서 사실관계가 복잡하게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선박왕과 완구왕에 관한 판결 등을 통해 거주자에 관한 법리가 진전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필자는 그에 대한 논쟁은 잠시 접어두고 다음과 같은 정책적인 점을 말하고 싶다. ‘역외탈세’라는 말의 본래 의미로 돌아가 보자는 것이다. ‘역외탈세’라는 단어가 가능한 것은, 외국의 경우 국세청이 국내 과세정보를 장악하는 것과 같이 외국에서 일어난 실물거래, 금융거래 정보를 입수할 수 없기에 자산, 자금을 국외로 도피 혹은 국외를 경유시키면 탈세를 쉽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외국을 탈세의 도구로서 이용하는 것이다. 홍콩, 버진아일랜드 등 조세피난처지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고 이를 통해 외국 자산을 양수도 한 뒤 양도차익을 은닉하는 수법이 그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이러한 행위가 세수를 부정하게 은닉하는 탈법임은 물론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도 지탄받을 행위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왕’들의 경우는 어떤가? 선박왕, 구리왕, 완구왕은 모두 국제적인 비전을 가지고 세계를 무대로 장사를 한 사람들이다. 지금은 풀이 꺾였지만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부르짖던 세계경영을 한 것이다. 이러한 국제경영은 젊은이들에게 충분히 귀감이 될 만한 것이다. 단지 이들이 이러한 고초를 겪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와의 ‘연’을 끊지 않았던 것이다. 국제를 상대로 장사하면서 외국에서 외국으로 발로 뛰는 삶을 살더라도, 늙어서 은퇴하면 한국으로 돌아오겠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었기에 국내에 부동산을 유지하고 가족들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결국 국내로 돌아오면 그들의 자산은 어떤 식으로든 국내에서 소비, 양도, 혹은 상속될 것이고 결국 국내의 세수에 흡수될 것이다. 결국 탈세가 아니게 된다는 의미이다. 현재 구리왕 차용규는 과세전적부심에서 인용을 받은 뒤에 우리나라와 모든 연을 끊으려 처자식을 해외로 이주시키고 모든 부동산을 처분하였다고 한다. 과연 이런 식의 ‘역외탈세’ 적발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가치관 형성을 유도할 것인지 의문이며, 더 나아가서는 세수에도 기여하는지 회의적이다. 국세청의 ‘역외탈세’ 적발 기법이 수준에 올라있는 최근, 이러한 정책적 판단-역외탈세가 다 같은 역외탈세인지-의 고려가 필요가 필요한 시점일 것이다.

 
  혼나야 할 역사편찬위(김구를 지우려 하다니..)
  (세금산책) 조세행정과 적법절차의 원리